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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문학

배움의 발견 Educated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by Bon ami 2020. 7. 9.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출판사 열린책들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공교육을 거부하는 아버지 때문에 16년간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렇게 공교육을 못 받았음에도 가족 중 절반 정도는 박사학위 소지자다. 이 집안 형제들은 극단적이다. 학교를 전혀 못 다닌 무학자이거나, 아니면 박사. 공부란 자신의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공교육을 불신해 학교를 보내지 않았음에도 뜻이 있는 자식들은 대학은 물론 박사학위까지 땄다.

놀라운 것이 또 있다. 정부와 공교육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는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 누구도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한다. 문제는 아버지가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 정신적 질환이 아니라면 다음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P.424)

타라의 아버지는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이 폐철을 처리하기 위해 대형 고철들을 자르기 위한 전단기를 들여오고(숀 오빠조차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어린 막내딸에게도 이 일을 시킨다. 타라가 침착하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일들이다(전단기가 얼마나 가공할 물건인가가 궁금하다면 222쪽~228쪽을 읽어 보길 바란다.).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치료할 수가 없었다. 절대로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절대적 권위 아래 가족들은 모두 피해자였다. 누구도 아버지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든든하며 행복의 근원인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이런 경우엔 가장 위험한 감옥이 됐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P.424)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 깔리어 사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의 두 기둥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타라의 가족은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아버지 곁에서 늘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모르몬교의 특징인 가부장적 속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현대가 아니라 한 100년 전쯤으로 돌아간 것 같은 상황.. 엄마는 보호자로서 자식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특히 폭력적인 숀에게 마치 아버지 앞에서처럼 전전긍긍하는 자세를 보인다. 형제간의 폭력을 보면서도 못 본 척하는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숀 오빠의 통제 불가능한 광기를 본 것일까? 그래도 엄마는 몸을 던져 막았어야만 했다. 엄마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말이다...

오빠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삼각함수 교과서를 사서 독학으로 공부를 계속했다. 그 다음에는 미적분학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책을 살 돈이 없었고, 그래서 학교에 찾아가 수학 선생님에게 책을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대놓고 비웃었다. “미적분을 독학으로 익힐 수는 없어. 불가능해.” 하지만 타일러 오빠는 물러서지 않았다. “책을 주세요. 혼자 할 수 있어요.” 학교를 나서는 오빠의 팔에는 수학책이 끼어 있었다.(P.86)

책 살 돈이 없어 선생님께 책을 달라고 요구하고, 선생님이 불가능하다며 비웃었지만 타일러 오빠는 물러서지 않았다. 타일러 오빠는 강철 같은 사람이다. 억압적 집안 분위기에서 힘겨운 성장기를 보냈지만(그래서 타일러 오빠는 심한 말더듬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짠하고도 믿음직스런 인물..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가 이런 오빠를 가졌다는 면에서 아주 최악의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이런 지지자를 가졌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이제 떠날 때가 됐어, 타라.” 오빠가 말했다. “오래 머물수록 떠날 확률은 점점 낮아져.”

오빠 생각엔 내가 꼭 떠나야 할 것 같아?”

타일러 오빠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전혀 주저 없이 말했다. “내 생각엔 이 집이 너한테는 최악의 곳이야.” 오빠는 속삭이듯 말했지만, 그 말들은 고함처럼 느껴졌다.(P.195)

타일러 오빠는 심한 말더듬이다. 그런 오빠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전혀 주저 없이 말했다는 것은 그만큼 확고하다는 것을 말한다. 오빠는 속삭이듯 말했지만 타라에게는 고함처럼 들린다. 타일러 오빠에 대한 타라의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타일러 오빠는 타라를 가족이라는 감옥으로부터 꺼낸다.

넌 할 수 있어.” 오빠가 말했다. “ACT 시험에만 통과하면 돼. 진짜 쉬운 시험이야.”

오빠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P.196)

ACT 시험이 쉬울 리가 없다. 더구나 타라는 학교 근처도 못 가본 처지다. 그러나 이 말은 맞는 말이다. ACT 시험은 진짜 쉬운 시험이다. 타라가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은 마음을 먹으면 결국 해내게 돼 있으니까...

교육을 받게 되면서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타라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자, 타라는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 늘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서술되어진 타라의 삶은 비로소 타라의 목소리로 서술될 수 있었다. 자유의 발견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딱딱한 사람이었다. 모든 주제에 관해 진실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항상 우리는 듣는 사람, 아버지는 말하는 사람이었다. 절대 반대 방향의 대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입을 열면 우리는 모두 침묵을 지켜야 했다.(P.352)

일방적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강요이자 억압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나는 모른다라는 생각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고 겸손의 동인이다. ‘말하는 사람은 꼰대일 수밖에 없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니까. 충고를 하는데도 꼰대가 아니라 멘토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 한다. 그 차이는 들어주는 태도라고 한다.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하고 그런 후에 자기 생각을 조언(충고)하면 사람들은 멘토라고 생각한단다. ‘들어주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건만.. 타라의 아버지는 절대 진리이자 절대 권위였다. 가족들이 얼마나 숨막혔을까.. 내말을 안 들어준다는 것은 나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다.

나는 그 책들을 방으로 가져가서 밤새 읽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열변도 좋았지만 읽는 순간 세상을 움직여 버린 단 한 줄의 글은 존 스튜어트 밀의 책에서 발견했다. “그 주제에 관한 어떤 지식도 최종적 결론이 될 수는 없다.밀이 염두에 둔 주제는 여성의 본질이었다. 밀은 여성들이 너무도 긴 세월 동안 강제당하고, 회유당하고, 옆으로 밀려나고, 여성적이라는 미명하에 일그러져 왔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의 타고난 능력과 염원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피가 머리로 몰려들었다. 아드레날린과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느낌이 함께 밀려들면서 내 정신을 깨웠다.(P.403~404)

오랜 세월 이 세상의 여자는 2류 인간이었다. 가부장제가 힘을 못 쓰는 오늘날에도 여자의 지위는 평등하지 않다. 여성들이 너무도 긴 세월 동안 강제당하고, 회유당하고, 옆으로 밀려나고, 여성적이라는 미명하에 일그러져 왔고, 그래서 이제는 여성의 타고난 능력과 염원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밀의 주장.. 그렇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이 세상은 아직도 위계적 구조를 가진 사회다. 적어도 여자와 남자에 있어서는... 타라네 가족이 믿는 모르몬교는 매우 가부장적 구조를 가진다. 심지어 일부다처제를 인정한다. 그 속에서 타라는 누구보다도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는 여성에 해당하리라.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P.471)

아버지는 타라를 사랑한다. 아니 가족 모두를 뜨겁게 사랑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들 인생의 족쇄다. 가족 개개인의 삶을 아버지가 규정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삶의 소유권은 아버지에게 있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각자 자기 삶을 찾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라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버지로부터 자기 삶의 소유권을 되찾아야 한다. 자신의 역사를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니까...

우리 부모님은 학대와 조작과 조종의 사슬에 꼼짝없이 묶인 채‧‧‧‧‧‧ 변화를 위험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멀리 쫓아내고 말지. 이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가정의 단결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고‧‧‧‧‧‧ 부모님은 믿음을 이유로 대지만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다른 것이다. 몸조심해라. 우리는 너를 사랑해.”(P.488)

타라에게 보낸 타일러 오빠의 첨부 파일이다. 자기 부모에 대한 군더더기 없고 감정을 싹 걷어낸 객관적인 평가다. 성장 과정에서 그토록 고통 받았으면서도 이렇게 객관적으로 담담히 표현해 낼 수 있다니... 그는 성숙한 지성인이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가족 구성원을 학대했고(아버지는 자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유린했다.), 진실을 왜곡시켜 조작했으며(아버지는 정부는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이므로 정부의 지침에 따라서는 안 된다고 늘 말했다.),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조종했다(아버지는 자기 말을 거역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가정의 단결을 내세우지만 타라의 집은 감옥이었다. 아버지의 모르몬교에 대한 믿음은 아버지 자신의 주관적 믿음이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그러니까 타라는 부모(아버지)라는 덫에 걸리지 않도록 몸조심해야 했다.

우리는 너를 사랑해.” 이 말이 타라에게 얼마나 든든했을까?

프린세스(저자의 고향에 있는 산 벅스피크. 저자의 아버지는 이 산을 인디언 프린세스라 불렀다.)는 계속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바다 건너에서도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그녀가 돌보는 말 떼에서 혼자 떨어져 곤란에 빠진 망아지를 부르듯이 나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부드러웠고 어르는 듯했지만, 내가 답을 하지 않고 돌아오지도 않자 분노의 소리로 변해 갔다. 내가 그녀를 배반한 것이다. 나는 분노를 일그러진 얼굴과 위협적인 자세로 버티고 선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녀는 그렇게 능멸의 신의 모습으로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와서 밭과 초원을 지키며 서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내가 그녀를 오해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떠난 것에 화내고 있지 않았다. 떠나는 것은 그녀의 순환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역할은 버펄로를 울타리 안에 가두고, 힘으로 녀석들을 한데 모아 제약을 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버팔로가 돌아왔을 때 환영하고 축하해 주는 일이 바로 그녀의 역할이었다.(P.494~495)

앞 부분의 프린세스는 타라의 부모를 닮았다. 곤란에 빠진 망아지를 부르듯 부드럽게 어르는 듯하다가 분노의 소리로 변해가는 모습, 그것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프린세스의 능멸의 신의 모습은 바로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타라는 깨닫는다. 그녀를 오해했었다는 것을. 그녀는 내가 떠난 것에 화내고 있지 않았다. 떠나는 것은 그녀의 순환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역할은 버펄로를 울타리 안에 가두고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었다. 버팔로가 돌아왔을 때 환영하고 축하해 주는 일이 바로 그녀의 역할이었다. 뒷부분의 프린세스는 부모들이 응당히 지녀야 할 모습이다. 아버지의 역할은 가족을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힘을 북돋아 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P.506~507)

타라는 교육을 통해 변신하고 탈바꿈했다.

타라는 교육을 통해 교육받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이 허위였음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가 허위였음을...

타라는 교육을 받고 나서 가족을 배신했다. 가족이 요구하는 것을 뿌리치고 자신의 소유권을 되찾았다.

교육은 가족이라는 수렁에서 타라를 건져 올려 자유롭게 했다.

 


[인상 깊은 내용들]

아버지는 정부가 강제로 우리를 학교에 가도록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정부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일곱 자녀 중 네 명은 출생증명서가 없다. 가정 분만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의사나 간호사에게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의료 기록도 전혀 없다. 교실이라는 곳에는 한 번도 발을 들여 놓은 적이 없기 때문에 학적부도 있을 수가 없다. 아홉 살이 되는 해에 사후 출생증명서를 받게 되긴 하지만, 아이다호 주정부와 연방 정부에게 일곱 살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P.12)

오빠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삼각함수 교과서를 사서 독학으로 공부를 계속했다. 그 다음에는 미적분학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책을 살 돈이 없었고, 그래서 학교에 찾아가 수학 선생님에게 책을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대놓고 비웃었다. “미적분을 독학으로 익힐 수는 없어. 불가능해.” 하지만 타일러 오빠는 물러서지 않았다. “책을 주세요. 혼자 할 수 있어요.” 학교를 나서는 오빠의 팔에는 수학책이 끼어 있었다.(P.86)

이제 떠날 때가 됐어, 타라.” 오빠가 말했다. “오래 머물수록 떠날 확률은 점점 낮아져.”

오빠 생각엔 내가 꼭 떠나야 할 것 같아?”

타일러 오빠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전혀 주저 없이 말했다. “내 생각엔 이 집이 너한테는 최악의 곳이야.” 오빠는 속삭이듯 말했지만, 그 말들은 고함처럼 느껴졌다.(P.195)

...

브리검 영 대학교는 홈스쿨로 교육받은 아이들을 받아.”

...

넌 할 수 있어.” 오빠가 말했다. “ACT 시험에만 통과하면 돼. 진짜 쉬운 시험이야.”

오빠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P.196)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길 거부한 것은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은 특권이었다. 그때까지의 내 삶은 늘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서술되어져 왔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강하고, 단호하고, 절대적이었다. 내 목소리가 그들의 목소리만큼 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P.312)

나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에 대한 실험을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19년 동안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이제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할 때가 된 듯했다.(P.334)

아버지는 항상 딱딱한 사람이었다. 모든 주제에 관해 진실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항상 우리는 듣는 사람, 아버지는 말하는 사람이었다. 절대 반대 방향의 대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입을 열면 우리는 모두 침묵을 지켜야 했다.(P.352)

나는 그 책들을 방으로 가져가서 밤새 읽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열변도 좋았지만 읽는 순간 세상을 움직여 버린 단 한 줄의 글은 존 스튜어트 밀의 책에서 발견했다. “그 주제에 관한 어떤 지식도 최종적 결론이 될 수는 없다.” 밀이 염두에 둔 주제는 여성의 본질이었다. 밀은 여성들이 너무도 긴 세월 동안 강제당하고, 회유당하고, 옆으로 밀려나고, 여성적이라는 미명하에 일그러져 왔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의 타고난 능력과 염원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피가 머리로 몰려들었다. 아드레날린과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느낌이 함께 밀려들면서 내 정신을 깨웠다.“ 여성의 본질에 관한 어떤 지식도 최종적 결론이 될 수는 없다.” 진공 상태, 지식이 부재하는 검은 공간에서 그만큼 위안을 얻어 본 적이 없었다. 밀의 선언은 네가 무엇이든 간에, 네가 여성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P.403~404)

그 학기에 나는 진흙이 조각가에게 몸을 맡기듯 나 자신을 대학에 맡겼다. 나는 내가 다시 만들어지고, 내 정신이 새로 짜여질 수 있다고 믿었다. 억지로라도 다른 학생들과 사귀려 노력하고, 어색하게나마 나를 소개하는 일을 반복해서 소수의 친구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 다음 나는 나와 그들 사이를 가르고 있는 벽을 허무는 작업에 착수했다. 처음으로 적포도주 맛을 본 날 새로 사귄 친구들은 내 찡그린 얼굴을 보고 웃었다. 나는 목 위쪽까지 올라오는 블라우스 대신 좀 더 패셔너블한 옷들을 입기 시작했다. 몸의 윤곽이 더 드러나고 목선도 덜 답답한 옷들을 골랐고, 민소매 옷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기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나는 그 대칭성에 놀라곤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보였다.(P.414)

평생 처음으로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는 내가 한 번도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여러 개의 폐철 처리장과 헛간과 목장들과 함께 벅스피크가 어떤 곳인지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줬다.

...

내가 가난했고, 무지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한 치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수치심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새로운 역사를 썼다. 나는 사냥을 하고, 말을 길들여서 타고, 폐철을 수집하고, 산불을 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가진 인기 있은 만찬 손님이 됐다. 산파이자 기업가인 멋진 엄마, 폐철 처리장을 운영하는 괴팍한 광신도 아버지. 나는 마침내 나의 이전 삶에 대해 정직해졌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진실은 아니었지만, 더 큰 의미에서는 진실이었다. ‘앞으로 펼쳐질진실, 미래의 진실에 가까우므로, 이제 모든 것이 더 나아지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으니까. 이제 엄마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니까.

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P.424~425)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P.471)

타일러 오빠의 첨부 파일

우리 부모님은 학대와 조작과 조종의 사슬에 꼼짝없이 묶인 채‧‧‧‧‧‧ 변화를 위험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멀리 쫓아내고 말지. 이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가정의 단결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고‧‧‧‧‧‧ 부모님은 믿음을 이유로 대지만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다른 것이다. 몸조심해라. 우리는 너를 사랑해.”(P.488)

내 머릿속의 역사학자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 아버지처럼 사람이라기보다는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선지자들이 미래의 비전을 보는 것처럼 역사학자들은 과거의 비전을 볼 것이기 때문에, 선지자들의 예언을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역사학자들이 제시하는 역사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심지어 봬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킹스 칼리지를 지나가다가 거대한 채플의 그림자를 보면서 소심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그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P.492)

프린세스(저자의 고향에 있는 산 벅스피크. 저자의 아버지는 이 산을 인디언 프린세스라 불렀다.)는 계속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바다 건너에서도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그녀가 돌보는 말 떼에서 혼자 떨어져 곤란에 빠진 망아지를 부르듯이 나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부드러웠고 어르는 듯했지만, 내가 답을 하지 않고 돌아오지도 않자 분노의 소리로 변해 갔다. 내가 그녀를 배반한 것이다. 나는 분노를 일그러진 얼굴과 위협적인 자세로 버티고 선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녀는 그렇게 능멸의 신의 모습으로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와서 밭과 초원을 지키며 서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내가 그녀를 오해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떠난 것에 화내고 있지 않았다. 떠나는 것은 그녀의 순환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역할은 버펄로를 울타리 안에 가두고, 힘으로 녀석들을 한데 모아 제약을 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버팔로가 돌아왔을 때 환영하고 축하해 주는 일이 바로 그녀의 역할이었다.(P.494~495)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P.506~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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