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유발 노아 하라리 /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출판사 김영사
<저자 소개>
유발 노아 하라리는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전공은 중세 역사와 전쟁 역사로,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역사에 정의는 존재하는지,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더 행복해졌는지 등 거시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보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의 세계사 연구는 유투브 등의 동영상을 통해 알려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전 세계 8만 명 이상이 그의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2009년과 2012년에 ‘인문학 분야 창의성과 독창성에 대한 폴론스키 상Polonsky Prize for Creativity and Originality in the Humanistic Disciplines’을 수상했고, 2012년에 ‘영 이스라엘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the Young Israeli Academy of Sciences’에 선정되었습니다. 인류학, 사회학, 생물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오랜 연구의 결과물인 <사피엔스>는 처음 이스라엘에서 출간되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이어 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국 30개 언어로 출간되어 전 세계적인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홈페이지 www.ynharari.com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총정리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책은 초대형 베스트셀러인데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습니다. 한 번 읽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죠. <사피엔스>는 제가 만난 인문학 책 중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대단한 책입니다.(제 인생관을 바꿀 정도로요.. ) 두께의 압박과 읽기 쉽지 않은 중압감... 그래서 제가 나서보았습니다. 읽었지만 석연치 않았던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꽤 긴 작업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별로 중요치 않았던 동물이었던 인류의 역사에는 3개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7만 년 전에 ‘인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인류 역사의 시작입니다.
농업혁명은 12,000년 전에 발생하였습니다.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한 혁명이었습니다.
과학혁명은 불과 500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볼 때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이 혁명은 인류의 종말을 가져오게 할 수도 있으며, 혹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롭게 시작하게 할 지도 모르는 혁명입니다.
저자는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에 대한 고찰이 이 책의 주제라고 말합니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방식을 말합니다. 인지혁명으로 사피엔스는 ‘별로 중요치 않았던 동물’에서, 지구라는 행성의 가장 치명적인 종으로 등극합니다. 사피엔스가 지나가면, 생태계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고, 대형동물들은 멸종됩니다.
무엇이 인지혁명을 촉발했을까?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이론이 가장 유력합니다. 덕분에 사피엔스는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무엇이 특별할까요?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의 언어가 매우 유연하다는 것을 꼽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뒷담화’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세상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언어가 진화했다는 것이죠.
‘뒷담화’는 사피엔스들 간의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켰다.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성은 정보전달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입니다. 인간이 상상으로 지어낸 것들.. 예를 들면 전설, 신화, 신, 종교.. 입니다.
허구 덕에 사피엔스는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화를 창조했고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입니다.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인데, ‘허구’의 등장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이 임계치(150명)를 넘어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 속의 질서’였다. 이들을 지탱해주는 것은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이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습니다. 농업인들은 수렵채집인보다 오히려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습니다. 수렵채집인은 농업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습니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습니다.
농업혁명은 폭발적인 인구와 방자한 엘리트 계급을 낳았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 농부에게서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농업혁명에 대한 하라리 입장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밀과 쌀과 감자는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삶의 질을 떨어뜨린 채 인구수만 불린 농업혁명은 ‘덫’이다.
한 종의 진화적 성공을 그 DNA의 복사본 개수로 측정한다면 농업혁명은 성공한 혁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농업혁명으로 인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니까요. 그러나 농업혁명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 빠뜨렸습니다.
농업혁명으로 사피엔스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수렵채집인은 먹을거리를 저장할 수도 없고, 그날 벌어 그날 먹었기 때문에 현재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농부들은 언제나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서 일해야 했기 때문에 ‘미래’에 발목을 잡히게 되었습니다.
과학혁명은 ‘무지’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근대 이전의 전통 지식이었던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현대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입니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류는 진보를 믿지 않았습니다. 황금시대는 과거에 있고 세상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죠. 상황이 바뀐 것은 근대에 들어서입니다. 근대 문화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 무지의 인정이,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결합하자 사람들은 진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과학이 어려운 문제를 하나씩 풀기 시작하자 인류는 가난, 질병, 노화, 죽음의 문제에도 희망을 품게 됩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죽는 것은 신이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심근경색이나 암, 감염 같은 다양한 기술적 실패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쿡의 탐험이 있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제도와 서유럽 전반은 지중해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였습니다.(뒤떨어진 후진 동네였다) 근대 이전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제국이었던 로마 제국도 대부분의 부를 북아프리카, 발칸, 중동지방에서 얻었습니다.
로마에게 서유럽은 광물과 노예를 제외하면 쓸모없는 땅이었다.
북유럽은 워낙 황량하고 미개해서 정복할 가치조차 없는 곳이었죠. 이런 유럽이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온실이 된 것은 15세기 말입니다. 1500년~1750년에 서유럽은 세를 얻고 남미와 북미, 대양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허나 그때도 유럽은 아시아 강대국들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유럽이 미 대륙을 정복하고 바다를 정복한 것은 아시아의 강대국들이 그런 지역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덕분이었죠.
1750년에서 1850년 사이, 세계의 권력 중심이 유럽으로 이동하였다.
근대 초기에 유럽이 근대 후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인은 현대과학과 자본주의 때문이다.
유럽인은 기술적인 우위를 누리기 전부터도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기술의 노다지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유럽인들은 그것을 잘 부릴 수 있었던 것이죠.
은행은 자신들이 가진 1달러당 10달러를 빌려주는 것이 허용된다.
미래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 9달러를 가능하게 합니다. 근대 이전에는 오로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 돈이 대표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장에 심각한 제약을 가했습니다. 새로운 사업에 돈을 조달하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죠.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경제가 얼어붙었습니다.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발견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재화를 인정하기로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용이다.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만일 지구 전체의 파이가 똑같은 크기로 남아 있다면 신용이 파고들 자리는 없습니다.
신용은 오늘의 파이와 내일의 파이 간의 차이다.
1776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인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반이다.”
“탐욕은 선한 것. 내가 부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이기주의가 곧 이타주의다.”
스미스는 부자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전체 파이의 크기를 늘림으로써 부자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부자는 사회에서 가장 쓸모 있고 인정 많은 사람이 됩니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성장의 바퀴를 돌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지만,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습니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노예무역에서 이익을 보게 된 사람들의 탐욕과 무관심에서 생긴 것입니다. 19세기에도 자본주의 윤리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유럽을 휩쓴 산업혁명은 은행가와 자본 소유자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노동자에게는 비참하고 가난한 삶을 선고했습니다. 1908년 이후, 특히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탐욕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불평등은 여전히 만연합니다.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의 성장은 거대한 사기인 지도 모릅니다. 세계 경제는 성장했지만 궁핍한 개인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다.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입니다. 산업혁명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지만, 불과 몇십 년마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냅니다.(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지식뿐이다)
소비지상주의 시대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량을 늘려야만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 제품들을 사주어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제조업자와 투자자는 파산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윤리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소비지상주의입니다. 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가족과 지역공동체가 붕괴하고 국가와 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산업혁명은 인류사회에 수십 가지 격변을 불러왔습니다. 산업적 시간에 적응하는 것을 비롯하여, 도시화, 농민의 소멸,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등장, 보통 사람에게 주어진 힘, 민주화, 청년문화, 가부장제의 해체 등입니다. 하지만 이런 격변들보다 더 중요한 사회혁명이 일어납니다.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붕괴입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국가와 시장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지난 2세기에 걸쳐 극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갖게 된 시장의 막대한 힘과 통신과 수송의 수단, 사무원과 교사, 경찰 등을 이용해 정부는 가족과 공동체의 전통적 결속력을 약화시켰습니다. 국가와 시장은 식량, 주거, 교육, 의료, 복지, 직업, 연금과 보험을 제공하여 개인을 돌보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
지난 2세기에 걸쳐 일어난 혁명들은 워낙 빠르고 과격한 나머지 사회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대부분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전의 사회에서 ‘질서’는 안정성과 연속성을 의미했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 사회질서는 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1945년 이래 대부분의 국가는 다른 국가를 침략하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예전의 국제 정치에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런 정글의 법칙을 무너뜨렸습니다. 드디어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가 존재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지난 500년은 깜짝 놀랄 만한 혁명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시기였습니다. 지구는 단일한 생태적 역사적 권역으로 통일되었고, 경제는 지수적으로 성장했으며, 예전이라면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과학과 산업혁명 덕분에 인류는 초인적 힘과 무한한 에너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질서, 정치, 일상생활, 인간의 심리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다.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고 지적설계로 대체하고 있다.
지적설계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1. 생명공학
2. 사이보그 공학(유기물 + 무기물)
3. 비유기물공학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신화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술이 발달할 경우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그 존재는 체격뿐 아니라 인지나 감정 면에서 우리와 매우 다를 것이다.”라고 저자 하라리는 말합니다.
과학자들이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사의 다음 단계에서는 기술적, 유기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입니다. 생명윤리라는 브레이크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는 과학 프로젝트는 절대로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며..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제가 굉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또 사피엔스 최고의 황금기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하루하루를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 봅니다. 내일은 어떤 세상이 올까요? 엄청나게 편리하고 윤택해지겠죠?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피엔스들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 자신의 의지와 감정도 통제하지 못한 채, 자기 삶이 아닌 설계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순수한 사피엔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초인간이나, 인간의 지적 설계에 의해 탄생한 비유기물공학적 생명체에 의해 지배당하는 초라한 사피엔스 신세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인간과 침팬지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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